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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남 편집위원 칼럼]"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코로나와 맞장뜬 가요 르네상스 미스터트롯

기사승인 2020.03.28  03: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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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남 편집위원
때는 바야흐로 한국 가요와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은 같아 우리 민족 감성에 잠재한 트롯 DNA가 불현듯 솟아 분출하는 현상을 실감하며 게다가 그런 류의 가요를 좋아하는 중장년층을 넘은 필자같은 노년들도 덩더꿍 그 분위기에 부화뢰동하고 있는 건지 여하간 최근 삶의 가장 큰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어 즐겁기도 하다. 작년에 이어 요즘 세간을 풍미했던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의 '내일은 미스트롯'에 연이은 '미스터트롯' 열풍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며 리바이블, 초미의 스포츠 게임 빅 이벤트나 A매치의 승부를 초조하게 기다리듯 매주 목요일 밤 10시는 며칠 전부터 트롯 열풍에 휩싸여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지냈다.

작년, 절찬리에 방영돼 '미스트롯 진(眞), 송가인이란 젊은 여가수를 일약 톱스타로 탄생시킨 후속으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날 저녁 거실에서 우연히 돌린 종편 채널서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 하고 부르는 오디션 프로를 옆방 권사와 함께 보는 순간 가슴을 에며 자멱질하는 임영웅이란 젊은 가수의 열창에 필자 내외는 그의 노래가 멎고 나서도 저녁 내도록 허밍을 하며 요즘 시쳇말대로 뿅 가버리고 말았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지만 역시 노래란 누가 부르냐에 따라 감흥이 다른 건 당연하겠지만 이날은 그저 마음에 드는 정도를 훨씬 넘어 계속 누선을 자극하여 말라버린 눈물샘에서 반복해서 눈물이 흘렀다. 하긴 눈물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 영혼에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했으니 다행이기도 한 것일까?

   
 
뭣 보다 다른 경쟁자들과 경선을 벌이는 사이에 마침 그 노래를 놓치지 않고 듣게 된 건 행운이란 생각이 앞섰다. 근 년 한두번 대구근대화거리 관광차 청라언덕과, 칠성시장, 그리고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며 싱어송라이터로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이다가 32세로 요절한 대구 출생 김광석(金光石/1964~1996) 가수의 볼거리 많은 추모거리를 방문 할 때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곡과 함께 여러번 들어 익힌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이를 최초에 부른 김목경에 이어 김광석이 불러 유행시켰던 것. 그러나 타계후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알만한 사람만 아는 이 곡이 미스터트롯에서 29세 나이 임영웅 가수에 의해, 그것도 절박하고도 첨예하게 순위를 다투며 새롭고 참신한 가수를 발굴하기 위한 공개 오디션에서 다시 듣게 됐으니 경쟁하는 가수 못잖게 필자도 숨을 죽이며 초긴장해야 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때/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새던 밤들/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 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오/여보 안녕히!

예전엔 깊게는 몰라도 가요나 팝을 들을 때 마음에 드는 곡을 만나면 흥이 나거나 따라부
기를 하는 정도에 그쳤었는데 최근 '노부부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각자 응원하는 후보자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젊은 가수들이 원곡자 보다도 더 담백하고 호소력을 더해 감동 넘치게 불러 마치 내 얘기를 노래하는 같아 첫 소절을 듣는 순간부터 먼저 눈물부터 흘려야 했다. 까닭은 왠지 몰랐고 작년에 50주년 금혼식을 보내고도 트로트 가요 한 곡에 팔순을 맞은 노년의 가슴이 이토록 카타르시스되고 그간 말랐던 눈물샘을 자극하여 끊임없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 것은 분명 과민성 센치멘탈 증상이나 노인성 우울증 때문이 틀림없는 것 같긴 하다.

101명이 참가하여 최종 결선에 오른 7명의 가수들은 피를 말리고 땀을 쥐게 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숨막히는 열띤 경연 끝에 각자 취득 종합점수에 따라 진(眞)에 임영웅, 선(善)에 영탁, 미(美)에 이찬원,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 6위 장민호, 7위 김희재로 결정되어 대미를 장식했다. 사람마다 개인적 취향이 달라 누구를 응원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겠지만 필자 내외는 초미의 관심을 두고 응원의 박수를 보냈던 '어느 60대~'를 부른 임영웅이 반짝이는 크라운을 쓰는 영광스런 모습에 밤잠을 설치며 식탁위서 소연도 벌였다. 매번 순위가 뒤바뀌는 순간 순간마다 애간장 녹이며 가슴을 조이기는 2002년 FIFA 제17차 월드컵 기간중 자원봉사활동 미디어 총책을 맡아 상암동 현장에서 대동령을 모시고 한국팀을 응원한 이래 처음인 것 같다.

나중 각종 매스컴들의 보도를 통해서 역대 예능 프로의 2위를 마크,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했다든지 경연 채점을 담당한 마스터들과 공연현장 참가 관객, 그리고 773만표의 국민참여를 통해 최종 진선미가 결정됐다느니는 큰 관심없고 오로지 그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이를 부른 가수의 매력에 감격하고 감동하여 난생 첨으로 트로트 가요 한곡이 노년의 가슴을 이리도 사무치게 하다니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매번이 결선 무대로 최종 7명이 결승전에 오른 후 방송부터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를 기다리는 마음은 스스로 돌아봐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온통 걷잡을 수 없는 전율로 깊은 마음속에 너울지는 감동의 파고는 마침표가 없었다.

일본 카라오케를 발전시켜 가요 문화와 관련 산업을 선도하며 한국 놀이문화의 선도적 첨병 역할을 해온 노래방 시설이 새로운 가무 영역을 대중화로 넓혀, 보릿고개를 넘어 밥술을 챙기게 된 오늘에 이르러는 힘든 과정에서 "누구나 가수"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노래 실력이 향상되고 "한잔 후에는 한 곡"이 우리의 새로운 여흥문화로 자리잡은 것이 사실이긴 했다. 그래서 노래 잘 하는 재주꾼이 놀랍게 늘었고 그 기초 위에 옛날엔 가수란 타이틀이 붙은 전문 노래꾼들만이 선도하던 가요 문화가 지금은 전국민적으로 외연이 넓게 보편화되어 작금 가요 천국이 됐다는 게 필자 생각만은 아닐 것 같다.

가요 전문가들은 이번의 미스터 트롯이란 장르가 발라드와 로큰롤과 댄스뮤직 범주를 포함하고 있어 트로트 장르로 제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구심점으로 오랜 세월 속에 묻혀왔던 옛 가요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됐고 여태껏 시도되지 않은 분야까지 포괄적으로 흡수하여 그 저변을 확대생산하게 됐다고 펑가하고 있다. 동시에 트로트 열풍이 크게 인기몰이를 했고 그간 중장년 층에만 어필했던 기호성이 앞뒤의 연령대를 초월하여 젊은 청년층에서부터 필자와 같은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대중적 트랜드로 한 몫 하는 대중가요로서의 영역을 확실히 굳히는 일차적 실험에 크게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전례없이 전파나 영상 매체들이 목숨을 거는 시청률 향상에서 단연 앞서 프로그램 제작의 기획과 플로팅 및 홍보가 돋보였고 출연자들의 뛰어난 실력이 이를 뒷받침했으며 청중들의 호응도가 박차를 더해, 심지어 트로트가 관심 밖이던 젊은 세대들도 눈을 돌리게 하는 견인력을 발휘, 트로트에 대한 관심과 흥미의 고조와 국민 전반에 걸쳐 시선잡중력을 유도하는 일대 획기적인 과업을 달성했다는 게 문외한 필자의 견해이기도.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하나로 정형화된 선율에 일본 엔카(演歌)에서 들어온 음계를 써서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한풀이 장르의 음악이란 사전적 의미로 알고 있던 트로트에 대한 인식이 높이뛰기를 한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오디션을 계기로 오랜 세월 속에 묻혔던 옛 가요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고 그간 다른 프로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이 크게 각광을 받자 트로트는 급격히 시청자들의 관심과 호감속에 신뢰를 얻게 되었다. 트로트에 방관적이던 젊은 세대나 중장년층 이상 정취자들이 텔레비젼 채널을 3시간씩이나 고정시키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진 것은 어디 필자뿐이지만 않고 보면 40년의 역사를 가진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 같은 장수 프로그램과 어깨를 다툴 수 있게 된 것도 큰 진화고 트로트가 이름하여 가요 부흥적 회기적 르네상스를 맞으며 일정 기간 동안 인기를 계속 유지할 것이며 이를 확인시켜 준 무대가 미스터 트롯이었단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특히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채널들이 이를 이미테이션하거나 패러디한 유사 프로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어느 전문가는 근원적으로 이같은 트롯의 부활은 우리 한민족에 잠재하는 음악성이 애절하기도 하고 신나게 흥을 돋우기도 하며 한을 뿌리다가 감미롭게 흐느끼게도 하고 다시 감칠맛나게 몰아치기도 하는 등 굽이굽이 소용돌이치는 노래 가사 끝의 마지막 떨림이 몰입도를 높이고 노랫가락 하나에 울고 웃게 만드는 오묘한 마력 때문이라고 했다. 또 우리 국민의 전통적 삶에 녹아오던 트로트의 본성을 깨우게 된 당해 오디션 프로 기획 자체가 적효했다는 평가로 집약됐다.

일본 엔카에서 뿌리를 찾거나 신파조의 뽕짝으로 낮은 점수를 받으며 양반격인 클래식에 묻혀 서민 취급을 받던 트로트가 대중이 열광하고 국민이 환호하는 음악적 센세이션 붐을 현재 뽕짝 가수들이 일으키고 있다. 중원의 불길같이 타오르는 열풍은 그간 천시받던 과거를 떨치고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성화같은 트로트의 봉화불을 높이 쳐들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 또한 비전문 가요 애호가인 필자의 우정이기도 하다. 하긴 근년들어 다방면에서 디지털에 식상한 나머지 옛 것을 다시 찾는 복고조(復古潮), 즉 뉴트로(Newtro)나 레트로(Retro) 열풍의 연장선상에서 이와 맞물려 트로트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K팝 문화 확산의 일환이란 지적 또한 주목할만하다.

음악 전문가들은 트로트는 원초적으로 우리민족의 기본정서였지만 한편 일부 연령층만 애호하는 소외된 장르였으나 이를 무대 중심에 올려놓고 보니 트로트란 장르 하나만으로도 전체 세대를 충분히 아우를 수 있는 컨텐츠로 발전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때마침 앞서 가고 있는 각종 뉴미디어에 접목되어 콜라보레이션 효과도 있어 트로트의 열풍이 단시간에 확산되는 절호의 계기를 맞게 됐다고 진단했다. 또 근본이 돌고 도는 유행가이고 보면 7,80대의 팬덤 할아버지 할머니들마저 이번에 누구 누구의 팬클럽에 가입했다고 필자에게 으스대는 트로트의 광풍이 언제까지 유행할 것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반짝 빛나지 말고 오래 사랑받기를 바라는 필자 희망 또한 간절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거를 목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정신무장과 단결을 위해 숨어서 불렀던 항일가요는 이제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이며 후세들에게 애국선열들이 남긴 호국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어 귀에 익은 가요라면 필자 부모 세대의 이애리수의 '황성옛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황금심의 '알들한 당신', 그리고 고복수의 '타향살이', 백년설의 '나그네의 설움'과 '번지없는 주막',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와 '신라의 달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무너진 사랑탑',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등이 기억나고 공연현장을 더러 본 기억도 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번 기회에 뽕짝이나 트로트에도 정통 트로트와 세미 트로가 있고 댄스 트로트, 발라드 트로트와 락 트로트 등 요즘 세대의 정서에 맞게 여러 종류로 구분이 되며 그간 시청자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공급자 위주의 일방적 방송만 들어야 했으나 근년에는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 뽕짝 트로트의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국민들에게 참신하고 신선한 감동을 주는 미스터트롯이 등장하여 노래만 잘 하는 게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음색에 유쾌한 퍼포먼스까지 곁들여 코로나로 방콕하며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듬뿍 줬다는 사실을 필자도 오랫동안 뜸했던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느냐? 난 요즘 미스터트롯 듣는 재미로 산다!" 는 문자를 자주 받는데서부터 더욱 실감한다.

또 필자는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도전적으로 청춘을 예찬하던 젊은이들의 꿈의 향연, 대학생들의 음악 경연대회였던 젊음의 혈기와 아우성을 담은 대학가요제를 잊지 못한다. 그 뒤를 잇던 강변가요제도 생각난다. 1977년 제1회대학가요제 대상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 페블즈(Sand Pebbles)를 비롯, J에게의 이선희, 노사연, 심민경(심수봉), 배철수, 유열, 김학래와 강변가요제의 장윤정을 보면 그 시절이 회상된다. 오랜 기억으로 수능 0.1%대의 고득점자가 법대나 상대를 안가고 음대를 지원했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삼던 메스컴들의 보도가 갖던 의미도 떠오른다.

대중음악 내지 실용음악과 클래식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몰라도 영화 매니어 필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음악 영화 '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Il Cielo In Una Stanza/1960)'의 해변 장면과 멋진 음악을 자주 회상한다. 클래식을 전공한 현학적 고품격의 안토넬라 루알디(Antonella Lualdi)와 그가 경멸하는 연적 유행가수 도메니코 모듀노(Domenico Modugno)와 첨예한 삼각관계를 벌이는 틈바구니에서 당대 최고의 디바, 미나 마치니(Mina Mazzini)가 극적으로 운명의 한 남자를 고르는 최후의 순간, 뜻밖에도 신분 열세인 도메니코를 선택, 그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서부영화를 보듯 박수를 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반추한다. 필자도 역시 원초적으로 출신 성분이 클래식과는 먼 거리의 트로트형이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대목이다.

60년대 필자의 학창시절 인기를 누렸던 톱가수, 서울대 법대 출신 최희준과 고려대 법대 김상희(최순강)의 가요계 진출과 유행가수 활동을 두고 화제 만발, 여러가지 평가가 회자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법대를 나와 검찰총장이나 대법관을 역임한 기라성 같은 율사나 법조인은 그 아무도 기억에 없고 고인이 된 최희준이나 지금도 무대에서 활동하는 김상희를 보면 인기면이나 유명도나 기타 사회 공헌도에서 단연 앞선다는 생각으로 일관하는 필자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 분야나 장르가 다를 뿐 클래식이나 실용음악이나, 대중가요건 트로트건 뽕짝이건-만들고, 듣고,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에도 국경은 없지 않을까다.

그리고 늘 평범하고 낮은 길을 택하며 살아온 80평생을 뒤돌아보며 최근들어 잃어버린 것일까, 잊어버린 것일까 나름대로 가장 소중히 머릿속에 간직해온 재산은 점점 줄어들어 이젠 찾을 길이 없다.중고교 시절부터 영수국은 뒷전으로 하고 5,60년대 마음에 들면, 지금은 올팝이 된 당시 유행하던 팝송이나 영화음악을 닥치는대로 밤을 새며 가사부터 익혀 가창력은 없어도 줄줄이 완벽하게 외우고 불러보던 수많은 곡들이 칠순이 지나자 한곡 두곡 가사가 잊혀져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기억에서 딜리트된 노랫말 멜로디를 이어가며 겨우 허밍하다 보면 위험투자를 하다 날려버린 금전 보다 뇌리를 빠져나간 노래 가사들이 더욱 아깝기만 하다.

아울러 며칠전 타계한 케니 로저스(Kenny Rogers)를 추모하며 이젠 팝이고 가곡이고 가요고 트로트고 간에 입으로 부르는 음악보다 귀로 듣기만 하는 음악으로 방향타를 디비에이션 해야겠단 생각이다.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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